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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죽음이 다가올때 가져갈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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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수년전 시어머님은 걷잡을 수 없이 전이되고 있는 암을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몇 번이나 재발을 거듭했어도 잘 견뎌내셨는데 마지막에는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지간한 진통제도 더 이상 듣지 않아 강력한 마약성 모르핀을 투여했는데 이걸 맞으면 고통 가운데에서 의식을 잃고 겨우 잠이 드실 수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는데 너무 마음이 아팠지만 내가 도와드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약성 진통제의 약효가 떨어지면 의식이 돌아오면서 다시 고통이 시작되었다. 너무 아파하셨고 너무 힘들어 하셨다...그 와중에 유일하게 어머님이 미소를 짓는 일이 있으셨는데 그건 아주 옛날...젊은 시절 살던 단칸방에서 4남매가 종기종기 부엌 문 앞에 모여 앉아 어머님이 구워주시는 붕어빵을 기다리던 추억을 말씀하실때 였다. 아주 가끔씩이지만 의식이 돌아오면 옛 추억을 말씀하셨고 그리워하셨다. 그때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뭔가 아련하게 내 어깨 너머의 먼 곳을 바라보시면서 희미하게 미소지으셨던.....

어머님은 돌아가셨지만 그 모습은 오래도록 내 마음 속에 잔상으로 남겨졌다. 나는 그때 결심했다. 

나는 앞으로 죽어서도 가져갈 수 있는 것을 위해 살겠다고....어머님을 유품을 정리하다 보니 한번도 신지 못한 새 신발과 새 옷들이 많이 있었다. 평소 검소하고 알뜰한 분이셨지만 돌아가실때가 가까워지자 그 동안 누려보지 못했던 삶을 잠시나마 느껴보고 싶어 구입하셨나보다. 아끼고 아껴 모아두신 통장의 잔고도 털어 최신형 자동차도 구매하셨다. 몇 번 타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신 후 그것은 결국 홀로 남겨진 아버님께 드리는 마지막 선물이 되었다. 새 신발, 새 옷들은 모두 기증품이 되어 자선단체에 보내졌고 신형 자동차는 아버님의 미숙한 운전솜씨로 크고 작은 접촉사고 끝에 폐차가 되었다. 알뜰하게 모아서 마련해 두신 통장의 현금은 아버님께서 보이스피싱에 당해 한 순간에 다 잃어버리게 되었다.

 

성경 전도서의 말처럼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었다.....다 사라지고 말 것들이었고, 모두가 남 좋은 일이었다. 그렇지만 행복했던 순간, 즐거운 기억은 아무도 가져가지 못한다. 마지막 눈 감는 순간까지....의식이 희미해 지는 순간에도 내 옆에 있어주는 유일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되었다.

나는 그 이후로도 열심히 일하고 있으며 지금도 열심히 나의 삶을 꾸려가고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준비를 하며, 고양이들을 돌보며, 소액이지만 매달 차곡차곡 돈도 모으고, 책도 짬짬이 읽고, 가끔은 맛있는 것도 먹는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그저 행복한 추억을 만드는 과정일 뿐이다. 죽음이 다가왔을때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으려면 하루하루 행복하게 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행복하려고 애쓴다. 고통의 순간,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때..그래도 생각은 할 수 있겠지. 추억을 떠올릴 힘은 있겠지.

마지막 순간까지 내 옆에 있어 줄 수 있는 행복한 기억들을 만들기 위해 나는 오늘도 힘차게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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